베를린, 숨은 결을 따라 걷다
당일치기로 시작해 1박 2일 동안 역사의 심장을 걸어본 우리는 이제, 그 너머에 있는 베를린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베를린은 분단의 도시였고, 화해의 도시였으며, 이제는 기억을 품은 미래 도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유적뿐 아니라, 사라진 것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들, 과거를 전시하는 방식, 도시 공간의 재탄생을 통해 베를린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됩니다.
3일차 여정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공원과 공항, 폐허와 재건, 통일 이후의 도시계획과 건축,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건축적 메시지까지. 깊고 넓게 확장된 베를린을 걸으며, 이 도시가 왜 ‘기억의 수도’로 불리는지를 체험합니다.

베를린 2박 3일 코스: 숨겨진 매력과 현대 베를린
2박 3일 코스는 1박 2일 코스에 포함된 명소들을 방문하며 베를린의 핵심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3일차에는 베를린의 광활한 자연과 현대적인 면모, 그리고 좀 더 깊이 있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들을 탐방하며 여행의 폭을 넓힙니다.
1일차: 시리즈 1편
2일차: 시리즈 2편
3일차:
🌇오전: 티어가르텐 & 전승기념탑,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오후: 템펠호프 공항, 유대인 박물관
🌃저녁: 포츠담 광장, 알렉산더 광장, TV 타워
3일차: 자연, 현대,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 티어가르텐 (Tiergarten)
가장 가까운 역: S+U Potsdamer Platz Bhf (U2, S1, S2, S25) 또는 S Berlin-Tiergarten (S3, S5, S7, S9)
베를린의 중심에 위치한 티어가르텐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대규모 공원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휴식 공간을 넘어, 베를린의 살아있는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원래 16세기 초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들의 사냥터로 사용되었으며, 1740년대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복구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습니다.
티어가르텐은 도시의 격동적인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에게 평화로운 자연 휴식처를 제공하며 베를린의 '회복력'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상징합니다. 공원 중앙에는 큰 호수가 자리 잡고 있어 조용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특히 봄과 여름에는 꽃들이 만개하여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공원 내에는 여러 중요한 조형물과 명소들이 있습니다. 높이 67미터의 '전승 기념탑(Siegessäule)'과 독일 연방 대통령의 공식 관저인 '벨뷔궁(Bellevue Palace)'이 티어가르텐 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원 중앙의 'Café am Neuen See'는 멋진 전망과 함께 음식을 제공하는 인기 장소입니다.
* 전승 기념탑 (Siegessäule)
가장 가까운 역: U Hansaplatz (U9) 또는 S Bellevue (S3, S5, S7, S9)
티어가르텐 공원 내에 우뚝 솟아 있는 전승 기념탑은 꼭대기에 황금빛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조각상(골든 리지)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 탑은 19세기 중반 프로이센 왕국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원래는 라이히스타그 근처에 위치했으나, 나치 정권 시절인 1938년에 베를린을 제3제국의 수도로 만들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전승 기념탑은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나, 나치 정권에 의해 전략적으로 재배치되고 제2차 세계대전의 포격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되면서, 독일 역사의 '권력의 변천'과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를린 시가전에서 병사들이 이곳에 틀어박혀 싸웠고, 탑 자체에 크고 작은 총격과 포격에 의한 탄흔이 남아있습니다. 탑에 새겨진 탄흔은 과거의 폭력을 물리적으로 증언하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베를린 전경은 도시가 겪어온 격동적인 역사를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독특한 시점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승리 기념을 넘어선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높이 67미터의 탑 꼭대기에는 높이 8.3m, 무게 35톤의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황금 천사상이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 4유로(현금만 가능)가 필요하며, 리프트 없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전망대에서는 티어가르텐과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합니다. 이 탑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가장 가까운 역: S+U Zoologischer Garten (U2, U9, S5, S7, S75) 또는 U Kurfürstendamm (U1, U9)
베를린 브라이트샤이트 광장 중앙의 쿠담 거리 초입에 위치한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독일 통일의 업적을 이룬 카이저 빌헬름 1세(1797~1888)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손자인 카이저 빌헬름 2세(1859~1941)가 건설했습니다. 교회는 신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며,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본당과 113m 높이의 종탑으로 구성되어 189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웅장했던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영국 공군의 베를린 공습으로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113m 높이의 종탑은 폭격으로 인해 71m만 남았고, 교회 내부 천장의 모자이크 장식도 손상되었습니다. 종전 후, 교회 재단은 재건축을 계획했으나, 전쟁의 참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파괴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강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에 교회 재단은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파손된 종탑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독일의 독특한 전쟁 기억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파괴된 종탑의 모습을 빗대어 현지인들은 이 교회를 '깨진 이' 또는 '썩은 이'라는 애칭으로 부릅니다. 이 별명은 교회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평화의 경고비'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기존 교회를 둘러싸는 4개의 신관이 세워졌는데, 육각형의 종탑과 팔각형의 신예배당은 독특한 벌집 모양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파손된 첨탑을 유지한 채 1층에는 기념관이 지어져 폭격 전후의 교회의 모습과 전쟁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 Airport)
가장 가까운 역: U Platz der Luftbrücke (U6) 또는 U Paradestraße (U6) 또는 S+U Tempelhof (S41, S42)
템펠호프 공항은 단순한 옛 공항이 아니라, 베를린의 복잡한 현대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현재는 광활한 공원으로 변모하여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공항은 나치 시대의 유산으로, 1941년 완공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역할은 나치 시대를 넘어 냉전 시대에 극적으로 변모합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 템펠호프 공항은 서방 연합국의 '베를린 공수작전'의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11개월 동안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식량, 연료 등 생필품을 항공편으로 공급하여 도시를 구원한 인도주의적 기적이었습니다. 당시 템펠호프 공항은 하루 2000톤 이상의 물자를 수송하는 데 집중되었고, '건포도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수송기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과자 꾸러미를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템펠호프 공항은 2008년 소음 문제와 활주로 길이 문제로 폐쇄되었으나 , 상업 지구로 재개발될 예정이었던 부지와 건물이 시민들의 요구로 공원으로 재개장되었습니다. 템펠호프 공항의 이러한 변화는 베를린의 복잡한 역사적 장소들이 어떻게 시민들의 삶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군사적, 이념적 대립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평화로운 휴식과 여가를 위한 장소로 탈바꿈하여, 과거의 갈등을 넘어선 도시의 회복력과 변화를 보여줍니다. 현재는 다양한 전시나 스포츠 경기 등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유대인 박물관 (Jewish Museum Berlin)
가장 가까운 역: U Hallesches Tor (U1, U3, U6)
2001년에 개관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전후 독일에서 유대인의 총체적 역사와 홀로코스트의 여파를 명확히 드러낸 첫 번째 건축물입니다. 이 박물관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작품입니다.
리베스킨트의 건축 철학은 그의 유년기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건축을 치유와 화해의 수단으로 보며, 기억, 트라우마, 집단적 스토리텔링의 힘을 디자인에 담아냅니다. 박물관의 인상적인 지그재그 형태와 교차하는 평면은 독일 유대인의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는 강력한 건축적 표현입니다. 특히 티타늄과 아연으로 덮인 지그재그 형태의 외벽은 '압축되고 일그러진' 다윗의 별을 암시하며, 600만 유대인의 희생을 거대한 슬픔으로 재탄생시킨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박물관은 방문객에게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기존의 18세기 바로크식 건물 옆에 새롭게 확장된 이 박물관은 독립된 외부 출입구가 없어, 기존 건물의 지하 통로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뼈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건축가의 설명과 연결됩니다. 박물관 초입부에는 '홀로코스트', '망명', '연속성'이라는 세 갈래 길이 펼쳐지며, 그중 '홀로코스트의 길'은 나치 희생자가 남긴 물건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공간 중 하나는 '공허한 공허 (Void of Emptiness)'로 불리는 24m 높이의 텅 빈 콘크리트 타워입니다. 이곳에는 조명이나 냉난방 장치, 그 어떤 전시물도 없이 오직 콘크리트 표면의 차가움과 짙은 어둠만이 가득합니다. 가느다란 빛줄기와 함께 예리한 모서리의 틈으로 스며들어오는 차량의 소음과 새들의 지저귐이 벽에 부딪히며 공간 전체를 울립니다. 건축가는 이 압도적인 공간을 통해 방문객이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이 느꼈을 깊은 상실감과 억압의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절망에 공감하도록 의도했습니다.
또한 '기억의 빈 공간'에는 이스라엘 예술가 메나세 카디시만의 작품인 '낙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두꺼운 강철을 잘라 만든 1만 개 이상의 입을 벌린 얼굴 조각들이 좁고 깊은 공간의 바닥을 덮고 있습니다. 방문객이 이 조각들을 밟고 지나갈 때 부딪히며 나는 둔탁한 쇳소리는 비명처럼 허공에 울려 퍼져, 희생된 유대인들의 부재와 상실된 인간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유대인 박물관은 건축물 자체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억과 트라우마를 다루는 강력한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례입니다.
* 포츠담 광장 (Potsdamer Platz)
가장 가까운 역: S+U Potsdamer Platz Bhf (U2, S1, S2, S25, S26)
포츠담 광장은 독일 베를린의 유명한 광장으로, 역사적, 문화적, 상업적 중심지 중 하나입니다. 19세기 초에 처음 설립된 이 광장은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붐비고 활기 넘치던 교통 중심지였습니다. 트램과 수십 개의 버스 노선이 이곳에서 각지로 퍼져나갔고, 바, 카페, 영화관, 호텔 등이 밀집한 베를린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폐허로 변했으며 , 전후 냉전 시기에는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버려진 공간', 즉 '무인지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베를린 통일 이후, 포츠담 광장은 대규모 재건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재건 과정에서 소니 센터, 쇼핑몰, 고층 건물이 들어서며 베를린의 주요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포츠담 광장의 극적인 변화는 베를린의 전후 경제적, 도시적 재탄생을 보여주는 강력한 내러티브입니다. 이는 독일이 파괴와 분단을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자본주의적 정체성을 포용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상흔을 인정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특히 '소니 센터(Sony Center)'는 일본 소니의 투자로 2000년 6월 개장한 복합 건물로, 비즈니스 사무실, 영화 박물관, 복합 영화관, 호텔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건축가 헬무트 얀이 설계한 소니 센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건물 내부 광장을 덮고 있는 텐트 모양의 거대한 유리 돔입니다. 이 유리 돔은 일본 후지산을 상징하며, 자연 채광만을 활용하여 광장을 밝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야간에는 파리 조명 예술가가 만든 조명으로 시시각각 색이 변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들은 소니 센터를 베를린 포츠담 광장을 상징하는 국제적인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 알렉산더 광장 & TV 타워 (Alexanderplatz & TV Tower)
가장 가까운 역: S+U Alexanderplatz Bhf (U2, U5, U8, S3, S5, S7, S9, S75)
알렉산더 광장은 베를린의 중심지이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쇼핑가입니다. 시청사, 교회, TV 타워, 각종 상업시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광장의 이름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방문에서 유래했습니다.
알렉산더 광장의 가장 눈에 띄는 랜드마크는 높이 368m로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베를린 TV 타워(Berliner Fernsehturm)'입니다. 이 타워는 동독 통치 시기인 1965년부터 1969년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당시 동독 정부가 서독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 중 하나였습니다. 1969년 10월 3일 동독 건국 20주년 기념일에 맞춰 공식 개장되었습니다.
TV 타워의 강철 돔에 햇빛이 비치면 십자가 모양으로 반사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는데, 이는 건축가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동베를린 시민들은 이 모습을 "교황의 복수(Rache des Papstes)"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의도치 않은 '십자가' 형상은 무신론 국가였던 동독의 국가 통제에 대한 아이러니한 전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알렉산더 광장에는 또한 '세계 시계(Weltzeituhr)'가 있습니다. 1969년 동독 정부가 만든 이 시계는 세계 148개 주요 도시의 현재 시간을 알려주며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독일 정부에 의해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독일 통일과 냉전 종식 이후인 1997년에는 기계 장치 수리 중에 시계가 업데이트되어, 레닌그라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알마아타가 알마티로 변경되었고, 키이우는 모스크바 시간에서 동유럽 시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정치적 이유로 동독 시절 제외되었던 텔아비브, 케이프타운, 서울특별시와 같은 20개 도시도 시계에 추가되었습니다. 알렉산더 광장과 TV 타워, 세계 시계는 동독의 기술적 우월성과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려던 시도를 보여주면서도, TV 타워의 '교황의 복수' 일화와 세계 시계의 통일 후 업데이트는 베를린이 분단된 이념 도시에서 세계와 연결된 통일된 대도시로 전환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붉은 시청사 (Rotes Rathaus)
가장 가까운 역: U Rotes Rathaus (U5) 또는 S Alexanderplatz Bhf (S3, S5, S7, S9)
알렉산더 광장 근처에 위치한 붉은 시청사(Rotes Rathaus)는 1869년에 완공된 베를린의 시청 건물입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붉은 시청사'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동베를린 시절을 거쳐 현재까지 베를린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베를린의 행정적, 시민적 중심으로서 제국 시대,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시대, 분단 시대를 거쳐 통일된 현재까지 그 기능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는 베를린이 겪어온 격동적인 역사 속에서도 도시의 행정적, 시민적 정체성이 꾸준히 이어져 왔음을 상징합니다. 시청사 내부는 정기적으로 전시회가 열려 시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개방됩니다. 시청사 정면에는 프로이센의 옛 궁전 앞에 있던 '포세이돈 분수(Neptunbrunnen, 1891년작)'가 1951년부터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베를린, 기억하고 고찰하며 나아가는 도시
베를린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역사의 흔적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는 독특한 도시입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분단과 통일의 상징으로 변화하고, 국회의사당이 투명한 민주주의를 건축적으로 선언하며,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체험을 통해 비극을 기억하게 하는 것처럼, 베를린의 모든 랜드마크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선 깊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은 냉전의 비극과 인간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예술을 통한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박물관 섬은 인류 문명의 보고이자 전쟁의 파괴를 딛고 일어선 문화 보존의 의지를 보여주며,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은 왕실의 화려함과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템펠호프 공항은 전쟁의 도구에서 평화로운 시민 공간으로의 전환을, 유대인 박물관은 건축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상실감을 체험하게 하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포츠담 광장은 폐허에서 현대적인 도시의 상징으로, 알렉산더 광장과 TV 타워는 이념 선전에서 글로벌 아이콘으로 변화하며 베를린의 역동적인 재탄생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베를린은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직시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도시입니다. 각 랜드마크에 얽힌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해하며 여행하는 것은, 방문객에게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깊은 성찰과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베를린은 방문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역사와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도시가 남긴 질문, 여행자의 마음에 머물다
2박 3일의 여행을 마친 지금, 베를린은 단순한 여행지 그 이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도시는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 상처 위에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폭격의 흔적을 그대로 둔 교회, 공수작전의 활주로를 시민 공원으로 만든 공항, 상실을 건축으로 표현한 박물관, 과거의 프로파간다 중심지였던 광장이 이제는 예술과 삶의 공간으로 바뀌는 모습…
베를린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린 과거를 기억합니다. 그리그러나 과거에 머물러 있진 않습니다. 미래는 과거로 부터 온 유물입니다. ”
그곳에 있는 모든 공간은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며, 그 기억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여정은 단지 베를린을 돌아본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되묻는 경험이었을지 모릅니다.
베를린, 그곳은 당신이 다시 돌아오게 될 이유가 분명한 도시입니다.
📚 도시를 따라 걷는 세 편의 여행,
당신만의 베를린은 어느 지점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나요?
시리즈 1편부터 다시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시작입니다.
👉 당일치기부터 다시 시작하기
하루에 담는 베를린 – 당일치기 핵심 여행 코스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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